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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명(考終命),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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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기사입력 2019/08/08 [09:36]

 

 


 세상에 태어나 생의 삶을 다하면 고종명(考終命)에 이른다. 이순(耳順)을 지내고 칠순(七旬)에 이어 팔순(八旬)을 바라보면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내 생애를 아름다운 삶으로 고종명 할 수 있을 것인가다. 인생은 출생도 중요하지만 생의 마무리를 잘해야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였다.

 

 내 삶이 어느 사이에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을 보냈다. 반백년 전에는 고려장 감의 나이라 했다. 칠순나이를 인생 칠십 지금시(人生七十只今時)라고들 했었다. 수명이 늘어나 팔순을 넘어서 구순, 그리고 백수까지도 살아 계신 분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행복이 오랜 수명을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이라고 한다. 뜻하지 않은 지병으로 자주 병원과 치료약에 의존하여 생을 유지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장수가 아닐 터이다. 나이 들어도 자신이 스스로 해내는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고들 한다.

 

내 살아온 세월은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면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주변 패권주의 국가들의 징검다리처럼 여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터이다.

 

우리 선대들은 지난날, 치욕적인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조국의 광복과 해방을 염원하면서 모질게도 살아 왔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맞이한 광복은 바로 분단에다 이념갈등이 고조되었다. 아울러 남북분단이 계속되더니 결국은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치러 내야만 했다.

 

  이런 세월에 그동안 나는 어찌 살아 왔는가. 돌아보면 일제 말, 태평양전쟁이 나던 해에 태어났었다. 어린 나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어른들과도 함께했다. 이어 3년의 미군정이 끝나고도 남북이 통일 된 나라가 아닌, 3.8선을 그은 분단 정부를 각각 세우고 말았다.

 

 결국 분단과 좌우갈등은 계속되고 하나 된 민족의 통일정부는 요원하기만 했었다. 오직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정권을 세우고 말았다. 분단으로 인한 6.25 전쟁은 많은 동포들의 죽음과 민족 갈등을 가져왔다. 7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전쟁은 더욱 큰 아픔과 고통이었다. 아까운 목숨들을 잃고 참적의 세월을 살아가야 했던 남북의 동포들이었다. 또한 분단으로 인한 갈등으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상을 덧씌워 더욱 아픔을 안겨준 일들을 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전쟁과 분단이 남긴 아픔은 끝이 없었다.

 

 또한 전쟁을 겪은 어린 나는, 6.25를 전후해서 우리 집의 장남인 22살의 맏형과 26살의 외삼촌 그리고 당숙들, 심지어는 머슴들까지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사실을 목도했었다. 인간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죽임을 당하고 또한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 1965년 1월에 군에서 제대 3개월을 남기고,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지원했었다. 당시 나는 그 위험한 전쟁에 어찌하여 명분도 없는 월남전에 지원하였는가? 오직 신원조회 통과여부와 경험을 위한 모험이라지만 더구나 용병이라는 사실에 곧 후회했었다.

 

그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참전할 용기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목숨은 하느님에게 맡기기로 했었다. 전후방이 없는 전쟁터에서 몇 차례 교전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참전 했었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왔지만 곧 후회를 했다. 우리 분단조국에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베트남에 통일을 방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루어 냈다.

 

 베트남 전쟁에서 귀국한 나는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의 꿈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분단을 허물기 위해서는 통일운동을 솔선해서 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북은 각 각 여러 방식으로 통일을 위해 줄달음 쳤지만 강대국들의 등살에 모두가 허사였다.

 

 우리 남북에 초기에는 북진통일론에서 멸공, 승공, 반공, 무력, 심지어는 흡수통일론까지 폈지만 무리였다. 북 또한 6.25를 해방통일의 유일한 기회로 생각했다지만 착각이었다. 이로 인해 남북은 전쟁으로 인한 천만의 이산가족을 양산하고 말았다.

 

 그동안의 통일방안에 종지부를 찍은 6.15 선언으로, 남북의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만이 한반도 통일방안이었다. 한 세대 전, 베트남의 통일을 무력통일이라 하지만, 사실은 민족통일이었다. 우리에게도 오직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이 주변국들과 함께 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살아온 생애와 남은 삶은 오직 전쟁이 아닌 평화다. 과연 한반도의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통일이 언제 이루어질까. 73년의 지구촌 최장기 분단은 부끄러운 너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8천만 동포들이 우리소원은 평화통일이라고 간절히 노래하고 있지 않는가.

 

 지난 73년 전, 맏형이 꿈꾸었던 하나 된 조국통일에 대한 여망을 팔순을 맞이할 아우가 부단히 진력하고 있다. 허나 우리 민족사에 아니 세계사에 길이 남을 통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분단으로 인한 슬픈 가족사가 있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내가 함께한, 효열 집안의 전효당 가훈을 실천하는 일도 내겐 중요하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삶의 끝자락은 가족들과 그리고 내 인연들의 건강하고 평화로운 고종명(考終命)이다. 그리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분단조국이 아닌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로 하나 된 조국과 민족이리라. 우리 남북 8천만 동포는 그 어느 때 보다 한반도 평화통일 기운이 서린다며 진정으로 통일의 그날을 꿈꾼다. 

 

 앞으로 많지 않게 남은 내 생애, 지구촌 세계 평화는 물론, 분단을 허물고 삼천리금수강산에 통일의 꽃이 만발하는 그날이 오기를 진정으로 소원한다. 한결같이 우리의 소원,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 우리 내 고종명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일 것이다.

 

 분단조국 삼천리금수강산에 평화통일의 그날을 온 8천만 동포들이 기원한다.

 

<이 글은 ‘인권연대’에 게재되었으며, 저자의 승낙을 얻어 본지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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